자평학

사주는 '출생기록' 관상은 '생활기록' 심상은 '그 사람의 미래'

관음자비 2010. 10. 25. 10:02

"사주가 관상만 못하고, 관상이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사주팔자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이구 내 팔자야!"를 외칠때는 그 불가피성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팔자가 관상만 못하다니 무슨 말인가?

관상은 얼굴에 들어난 이미지다. 태어날때부터 일정한 틀을 가지고 나는 것이지만 얼굴에는 살아오면서 쌓은 흔적이 남게 된다.

 

사주 출생 기록 이라면 관상 거기에다 출생이후 생활기록 까지 덧붙인 셈이다. 그러니 생활기록이 훌륭한 사람은 출생기록의 문제쯤은 쉽게 이길수도 있다는 뜻이다.

 

심상은 또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 사람과 재물이 다 그러한 관계의 하나이다.

그 관계에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게 돌아올 몫은 변할수 밖에 없다. 마음쓰기에 따라 그 몫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심상 은 곧 그사람 미래 이다.

사주팔자가 출발선상의 정해진 몫 이었다면,

관상은 그 몫을 가지고 지금까지 운영해 온 실적 이고,

심상은 그 둘을 종합해서 앞으로 거두어질 실적의 예상치 이다.

 

 옛날 어느 과부가 가난해서 먹고 살 방도가 없었는데, 듣자니 섬을 오가며 장사를  하면 돈을 번다고 했다.

 과부는 어렵사리 빚을 내서 섬으로 들어가려 했다.거기로 가서 해산물 등을  싼값에 사다가 뭍에 내다 팔려는 요량이었다.

 

그러나 과부는 거던 도중에 그만 돈 보따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장사는 고사하고 빚만 지게되었으니 하늘이 노랬다. 마침 길가던 어떤 노인이 그 돈 보따리를 주웠다.

이렇게 큰 돈이면 무슨 사연이 있을터, 노인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반나절을 기다려 주인인 과부에게 돈을 돌려 주었다.

 

 이리하여 과부는 돈 보따리를 품에 안고 나루로 와서 배를 타게 되었다. 한참을 가던 중 배에 탔던 청년 하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너무 깊은 바다여서 아무도 구하려 들지 않았다. 과부는 바짝 애가 탔다.

 

"여보시오,지금 저 청년이 죽을 지경인데 누구 구해줄 사람 없소? 구해 준다면 이 돈을 다 드리겠소." 그제야 누군가 나서서 그 청년을 구해냈다. 그렇게 청년을 구한 과부는 빈털터리가 되어 난감했다.

이제 장사를 할수도 없고 빚쟁이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청년은 그 과부더러 함께 자기집으로 가자고 했다. 놀랍게도 그 청년은 과부의 돈을 찾아 준 노인의 삼대 독자였다. 청년은 아버지께 권하여 과부를 새어머니로 모신 뒤 극진히 효도했다고 한다.

 

돌고 도는게 돈이라지만 그 속성을 이렇게 잘 드러낸 경우도 흔치 않겠다. 돈이 여러바퀴를 돌면서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과부에게는 먹고살 방도를, 노인에게는 돈보다 귀한 아들의 목숨을, 아들에게는 포근한 어머니를 선사했다.

 

노인은 큰 횡재 앞에서도 돈에 담긴 `무슨 사연'을 생각했고,과부는 제 돈만 앞세우지 않고 `죽어가는 목숨'부터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이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눈앞의 이익만 좇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조금의 차이도 없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들이 그 과부를 새어머니로 맞는 것이나, 과부와 노인이 서슴없이 재혼한 이유가 모두 그러한 심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작은 이익을 버릴 때, 돌고 돌아서 더 큰 것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임을 확신시켜 준다. 설령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렇게 실컷 돌면서 온 세상이 그만큼 좋아 질것이니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포기한 천냥이 열 바퀴를 돌면 만냥이 되고,그것이 다시 열 바퀴를 돌면 십만냥이 된다. 세상에 이렇게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 워렌 버핏 같은 투자의 귀제가 있다고 한다면 대체 무얼 보고 투자할것인가? 보나마나 심상일 것이다. 사주를 보고 투자하면 하수고, 관상을 보고 투자하면 중수이며, 심상을 보고 투자하면 고수다.

 

과거만 보면 하수요, 현재까지 보면 중수요, 미래까지보면 고수다.

                                                                                                                                           -좋은생각 08'2월호에 실린 대구교육대 이강엽교수님의 글 -